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병이어의 기적 (문단 편집) == 해석 == 이 일화를 두고서 갖가지 이야기가 나오는데, 일단 [[그리스도교]]의 교리와 교인의 기본적인 관점은 실제 예수의 기적으로 나타난 초자연적인 일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하기야 예수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믿는 마당에 '먹을 것이 늘어났다'는 기적을 믿지 못할 이유가 딱히 없다. 반대로 비기독교인은 현실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남몰래 후원을 받은 것이라든지, 참석한 이들이 각자 먹을 것을 내놓으면서 나눠먹은 덕분이라는 식으로. 다만 의외로 신학적 관점에서도 현실적인 해석을 내놓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18~19세기를 살았던 하이델베르크 출신의 신학자 H.E.G. 파울루스를 위시하여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사실 수많은 군중이 몰래 자기 먹을 것을 [[하나]]씩 갖고 있었는데, 어린애가 자기 먹을 것을 나누어주는 것을 보고 [[군중심리|분위기에 휩쓸려서]] [[십시일반|서로서로 광주리에 식량을 담기 시작해서 그런 기적(?)이 나왔다]]'는 해석을 했다. 나름대로 감동적이면서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초자연적인 '기적' 뿐만 아니라 남을 위해 베푸는 선행 또한 종교가 추구하는 큰 미덕 중 하나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은 종교계에서도 종종 언급된다. 일례로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죽은 이를 위한 미사#장례 미사|장례 미사]]에서 [[정진석 니콜라오 추기경]]의 추도사에도 이러한 해석이 언급된다. 이 해석을 바탕으로 몇몇 사람들은 [[예수]]가 빵과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보다 [[사람]]들이 자기 것을 내놓는 것이 더 큰 기적이 아니냐고 말하기도 한다. 이런 해석은 이성의 시대에 종교를 합리적으로 해석하고자 했던 노력의 산물인데, 가톨릭 [[해방신학]]에서도 이 해석을 채용했고 또 신천지같은 [[사이비 종교]]에서도 이런 해석을 채용한다. 해방신학이나 이런 교파가 아니더라도 일반 개신교회 및 관련 단체에서 나눔과 기부의 정신을 강조하며 이와 비슷한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기적보다는 선행이 상대적으로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해석을 반기는 교인들도 많지만 또 반대로 예수가 단순히 사람들에게 좋은 깨우침을 주는 스승이 아니라 메시아라는 증거이기도 한 '초자연적 기적'을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한 평범한 현상으로 해석하려는 것을 일종의 폄훼라고 보고 불쾌해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사실 예수가 빵과 고기를 만들어내는 것은 초자연적인 모습이기는 해도 일단 예수 한 명이 결심하면 가능한 반면 사람들이 알아서 먹거리를 내놓는 것은 예수야 절대선이니 굶을 처지의 사람들을 보며 그런 결단을 내리는 게 쉬운 일이겠지만 일반 사람이라면 남을 위해 내 것을 내놓는 게 어디 쉬운가? 물론 간혹 자신의 전재산을 내놓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렇게 수많은 사람이 모인 상황에서는 [[방관자 효과]]에 의해 자신이 안 해도 남이 해줄 거라는 생각 때문이라도 안 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그런데 예수도 아닌, 일개 평범한 사람이 너도나도 나섰다는 것은 군중심리가 있었다고 해도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보통 일이 아니긴 하다. 예시를 들면 현재에도 남이 어려운 상황에서 자기 일도 아닌데 다 같이 힘을 모아 도와준 일이 뉴스에 보도되는 걸 생각해 보자, 심지어 그 일이 수십 명 정도여도 뉴스를 타는데 수천 명이 저랬다면 군중심리가 작용했더라도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판단은 알아서. 이 해석대로면 [[마르코 복음서]] 8장 18~21절에 나타난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는 뉘앙스가 좀 미묘해지는데, 이는 예수가 사람들이 베풀 것임을 [[예지|미리 알고 있었다]]고 하면 해결된다. 즉 예수는 사람들이 먹을 것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고 연결하면 얼추 맞는 말이 된다. 다만 이 해석에도 맹점은 있는데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를 보면 알겠지만 예수는 이 사람들을 속물 취급하며 결국 '''떠난다.''' 비록 완전 스스로 나선 것만은 아니라도 그래도 남을 위해 스스로 먹을 것을 내놓는 사람들을, 그것도 '예수가 제공하는 물질적 풍요'에만 눈이 멀었다는 이유로 떠난 것은 설명이 어렵다. 또 한 가지 해석 방법으로 5,000명이 넘는 추종자 중에서 [[부자]]가 있었고, 그들이 [[예수]]의 열악한 상황을 지켜보고 남몰래 음식을 끼워넣은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다만 사람 한명이 5,000명이 먹을 식량을 몰래 숨기고 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명이 아니라 몇십명의 부자가 힘을 합쳤다면 가능할지도... 아예 [[오역]] 때문이라는 의견도 존재한다. 조철수 교수의 책 《예수 평전》에 따르면 ‘오천 명’이라 번역된 아람어 본(페시타) 신약성서에는 ‘오천’이라고만 돼 있다. 오천은 히브리어로 ‘하메셰트 알라핌’이다. 그런데 이를 ‘하메셰트 알루핌’으로 읽으면 ‘다섯 천부장’(1,000명 조직의 대표)이라는 뜻이 된다. 당시 히브리어나 아람어에는 모음 부호가 없었기 때문에 알라핌을 알루핌으로 읽는 식으로 보면 오천을 오천 명의 군중이 아니라 ‘다섯 천부장’으로 읽을 수 있으므로, 조 교수는 ‘빵을 먹은 이들이 다섯 천부장이었다’는 말은 백부장과 오십부장들이 참석한 그날의 특별한 만찬 의례에서 그들 가운데 5명의 천부장을 선출했다는 얘기고 예수가 그들에게 성찬의례를 베풀었다는 뜻이라고 풀이하여 번역의 오류가 만든 오해일 수 있다고 한다. 다만 이러한 의견은 신약 성서는 애초에 그리스어로 쓰여졌다는 점이 문제가 되고, 번역의 오류라면 옳게 번역된 사본도 있어야 하는데 그러한 사본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 문제가 된다. 해석이 어찌하든 간에 여러 [[학자]]들은 이 기적이 후대 교회의 [[성체성사]]와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성찬례는 지금은 천주교든 정교회든 개신교든 굉장히 간소화되어서 조촐하게 빵 한 조각 먹고 마는 형태지만 초기 기독교의 성찬례는 교인들이 모여서 각자 음식을 가져 온 것을 나누며 끼니를 먹는 것이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예수를 미화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변개한 것이든, 저자가 신학적 의도를 담아 은유를 위해 변개한 것이든, 아니면 구전 전승 중에 변개가 된 것이든 이것이 후일 성찬례의 기원이 된 것은 확실시된다. 다만 예수가 최후의 만찬 전 공생활 중에 정말로 성찬례와 유사한 의례를 제정했는지 아닌지는 아직은 논란거리이다. 예수 후대에 형성됐다고 보는 측은 성찬의식의 연대를 끌어올리기 위해 삽입된 구절이라고 보고 있다. 생전에 제정한 게 맞다고 가정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람들이 각자 가지고 있던 음식을 몰래 꺼내서 불어난 것'이라는 교훈적 해석이 사실인 셈. 다르게는, 열두(12) 광주리가(광주리가 아니라 바구니 - 헬라어로 코피노스로 이는 광주리에 해당하는 스푸리스보다 작은 것이다.) 남은 것은 [[12지파]]를 암시하는 것으로도 보인다. 각각 육지와 바다를 상징하는 빵과 물고기를 통해 세력의 번성을 비유한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교세 확장 같은 과격한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외에도, 소위 번영복음 주의자들이 말하는, “먼저 자신이 물질의 풍성함을 누려야 더 크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라는 사상에 반례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소년의 한끼 도시락 정도의 불과한 적은 물질로도 얼마든지 큰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 보통은, 비록 가진 것이나 능력이 별로 대단하지 않은 자들이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크게 쓰임 받을수 있다는 내용으로 교회에서 설교되고 있다. 개드립으로는 [[예수]]가 실은 [[외계인]]이었고 남몰래 가지고 있던 분자 증폭기를 사용해서 [[빵]]과 [[물고기]]의 분량을 늘린 것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